SNS 속 세상    2025.1월호

다만세, 깃발 그리고 응원봉

새 시대의 집회 문화



오민정 편집위원





“어제 올라온 깃발 사진 봤어?”

“어떤 거요? 재밌는 거 되게 많던데.”

“음. 나는 ‘원고하다 뛰쳐나온 로판작가 모임회’랑 ‘내향인’ 같은 거? ‘로판작가 모임회’는 진짜 서체까지 완벽했어. 

 근데 내가 제일 좋은 게 뭔지 알아?”

“응원봉?”

“음, 응원봉도 좋긴 한데, 나는 민중가요 대신 다만세 부르는 게 좋던데.”

“다만세도 이제 옛날 노래예요. 민중가요 같은. 저도 이번 주에는 꼭 나가 보려구요.”



다만세, 공동체의 노래가 되다

12월은 정말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12월 3일에는 비상계엄이, 7일에는 탄핵안이 부결되었고 14일에는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사람들은 거기로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과 동시에 국회 앞 무대에서는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다시 만난 세계’는 더 이상 단순한 클래식한 k-POP이 아니라 거리의 응원가, 공동체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소녀시대의 ‘다만세’가 ‘거리의 응원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 기점이었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를 기점으로 등장한 ‘다시 만난 세계’는 국정농단과 탄핵, 대규모 집회에서도 등장했다. 그리고 이 무렵,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 힘)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에 힘입어 LED 촛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LED 촛불뿐 아니라 k-POP 아이돌 응원봉도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 같이 등장한 것이 ‘아무 깃발’이었다. 당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특정 세력에 의해 동원된 정치 단체로 매도하려 하자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아무 깃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장수풍뎅이 연구회’였고, 이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후 재기발랄한 모임, 문구를 담은 깃발들이 집회마다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새로운 집회 문화의 시작이었다.


사실 2016년 시작된 거리의 K팝 응원가는 ‘다시 만난 세계’만은 아니었다. 그룹 GOD의 ‘촛불하나’도 있었다. 그런데 하필 왜 ‘다만세’가 거리의 응원가가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어왔다. 2016년 당시 이화여자대학교에서의 시위가 학생회의 개입과 집회의 방식(구호, 민중가요 등)을 강박적으로 배제하는 입장에서 선택하게 되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퀴어축제에서부터 기원을 찾기도 했다. 누군가는 가사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의식적인 선택이었다고도 하지만 이는 k-팝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와 더불어 집회의 방식과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그렇게 ‘다만세’는 새 시대의 투쟁가요가 됐고, 깃발과 응원봉은 새 시대의 집회 문화가 됐다.


새로운 집회 문화, 시대의 전환

이번 집회를 보며 “덕후들이 나라 걱정하게 만드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 “덕후들은 이미 집회에 최적화되어 있다”, “분열된 k-POP 아이돌 팬덤 통합이라는 그 어려운 일을 이번 정부가 해냈다”, “시위가 세대 통합을 이끌어냈다”, “새로운 집회 문화도 좋지만, 더 이상 새로운 집회 문화가 나올 일이 없게 했으면 좋겠다”는 씁쓸한 농담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집회의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낯설지만 고무적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보다 선배인 지인들이 올리는 SNS를 보면 이러한 시위의 분위기, 응원봉들이 과거의 경험에 비해 너무 낯설지만 썩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갤러리들을 장식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재치 있는 문구와 응원봉, 온라인 게임과 함께 집회를 즐기는 ‘피크민 블룸’, 마치 콘서트장에서처럼 이어진 핫팩과 보조배터리, 간식 나눔, ‘다만세’의 가사를 공부하는 5060의 모습은 단순한 흥미로움을 넘어선다. 이는 과거 독재나 항쟁의 경험이 없는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통합, 세대를 넘어선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시위로의 진화이자 시대의 전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눈 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