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속 세상    2025.4월호

연프공화국의 새로운 계급 문화와 결혼



오민정 편집위원





“아니, 아무리 요새 연프(연애 프로그램)이 유행이라지만 신규 프로젝트 제안마저도 연프 컨셉이 

절반이 넘어가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도 뉴스에서 85년생 남성의 절반이 미혼이라던데, 근데 또 결정사(결혼정보회사)들은 잘 된다던데요?

“결정사도 어디 그냥 결정사 뿐입니까. 이건 여행과 결합한 프로그램이니까 그래도 봐줄 만한 거죠. 

그… 강남 아파트 중심으로 결성된 결혼정보회 들어보셨죠?”

“아. 그 반포 뭔가 하던 거요. 나 원 참…. 시대에 따라서 사랑도 결혼도 달라진다지만, 

진짜 이제는 너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정말 따라가지를 못하겠네요.”



맞선을 위한 ‘아파트’ 공동체?

얼마 전, 신규 프로젝트 심사에 갔다가 나도 모르게 옆자리 심사위원에게 푸념을 했다. 요즘 아무리 연프가 대세라지만 공모사업에 제안하는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이 같은 컨셉이었던 것이다. 


연프의 인기는 생각보다 꽤 오래됐다. 2010년대 초 SBS의 ‘짝’부터 시작해서 2018년 채널A의 ‘하트시그널’, 넷플릭스의 ‘솔로지옥’, MBN의 ‘돌싱글즈’, SBS의 ‘신들린 연애’ 등 방송사며 OTT별로 다양한 컨셉의 연프를 제작·방영하고 있다. 당연히 여행을 컨셉으로 한 연프도 인기다. 최근에는 ‘하트 페어링’과 같이 기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여행 콘텐츠를 합친 ‘여행 연프’도 속속들이 제작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모사업에서도 로컬관광과 연프를 컨셉으로 한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밀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사를 보는 입장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무엇보다 그들의 주장만큼 제안한 프로그램들이 독창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게 제일 컸지만, 한 편으로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화, 그리고 그 관계성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이전부터 결혼을 매개하는 직업과 서비스는 있어 왔지만, 소위 결정사는 우리 시대의 문화다. 자본주의와 결혼제도가 만나 발생한 사업 형태. 비슷한 유형의 서비스인 데이팅 어플이 외모나 취향 기준이라면, 결정사는 직업과 자산과 같은 조건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원결회’는 좀 더 다른 형태다. 원래 명칭은 ‘반포 원베일리 결혼정보회’. 소위 서울 반포동 ‘대장 아파트’로 불리는 ‘래미안 원베일리(2024.12. 기준 평당 2억원 호가)’ 아파트 내 입주자 맞선을 위해 결성된 모임이다. 가입 기준은 당초 원베일리 아파트 입주민 당사자와 가족에 한정되어 있다가 최근에는 서초, 강남, 반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확대했다. 이외의 경우에는 별도의 가입 신청과 원결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현재 350여 명 규모의 이 모임은 벌써 2쌍의 커플이 탄생했다고 한다. 




신규 연프인 ’하트페어링’에서는 연애와 결혼에 관한 출연자의 가치관을 각각 책으로 만들어 

만남 전에 책 내용으로 이상형을 고르게 했다.




‘어디에’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지만 한편으로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미 결정사를 통해 자산 등 조건을 중심으로 한 결혼 문화를 경험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조건 중 하나인 부동산에 따라 결혼문화마저도 계급이 달라지는 듯 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전 시대에도 결혼 문화가 반드시 사랑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채집과 농경시대, 산업사회로 발전해 오면서 결혼은 경제적 조건에 더 가까운 제도였던 것도 인정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들만의 세상’이니 ‘부의 대물림’이니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을 뒤로하고 어쩌면 아파트를 결혼 조건으로 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봐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 지금 당장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이런 문화가 퍼지고, 어디까지 변질될지에 대해서는 사실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과연 아파트를 기반으로 한 결정사가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에서 그칠까? 어쩌면 대한민국의 2024년, 2025년 사이의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이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브랜드 아파트마다 결혼을 기반으로 한 또 다른 부동산 계급사회 문화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야흐로 ‘어떻게’ 보다 ‘어디에’ 사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 이러한 흐름이 새로운 결혼 풍속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