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또 무슨 일 일어난 거 아냐?”
“왜?”
“아침 뉴스 자막으로 또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설마 또 싱크홀은 아니겠지?”
“아니 대체 무슨 사고가 이렇게 많이 일어난대. 이거 불안해서 어디 다니겠니.”
“진짜 이제는 땅 꺼지는 것도 걱정하면서 길을 걸어야 해? 끝내주네.”
아침, 엄마와 식사를 차리며 뉴스를 보다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곧이어 뉴스에서는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전에는 어쩌다 한번 작은 규모의 도로 패임 앞에서 ‘이게 다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대로 안 하고 공사하면서 안일하게 몇 개 빼먹은 것들 때문에 그래’라고 농이 섞인 푸념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 급격한 대형 싱크홀 뉴스를 보고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SNS에는 인근 주민들이나 통행자들의 사진과 스레드가 한가득 올라와 있었다.
2025년 3월 11일, 강동구 명일동에서 대형 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다. 뒤이어 4월 13일 부산 사상구와 경기도 광명시, 15일에는 광주 동구, 20일에는 대전 서구에서 싱크홀이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뒤를 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내 발밑의 땅이 꺼져버릴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연발생적인 싱크홀도 있다. 석회암 함량이 높은 지반의 경우, 물에 녹아 동굴이 생기고 지면이 내려앉아 호수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도심의 싱크홀은 다르다. 인공적으로 지하에 만들어 놓은 터널과 상하수도관 같은 구조물 때문이다. 구조물에 균열이 생겨 수분이 새어 나올 경우, 점점 흙이 구조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포장된 도로 밑으로 빈 공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고는 상하수도관 공사 외에 주변에 큰 공사-지하철 연장 공사 같은-가 있는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국에는 인재였다는 소리다. 연이어 사고가 터지자 각 지자체별로 싱크홀 점검 및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시민이 제작한 싱크홀지도
지도는 왜 비공개되었나
그렇다면 왜 이런 사고들을 대처하지 못했던 걸까. 2024년 연희동 싱크홀 사고 이후 서울시가 ‘지반침하 안전 지도’를 만들고서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해서 비난이 일었다. 부동산 가격 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사유였다. 부동산 가격 하락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후속보도에 따르면 이 지도 또한 공개하기에 몹시 부실하다는 평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이미 10년 전 784억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만든 ‘지하 지도’ 역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싱크홀 위험도를 예측하기 위한 필수적인 정보도 부재할 뿐 아니라 10년간 업데이트조차 되지 않았다. 단순한 정보 수집 나열에 불과할 뿐, 전문가가 아닌 한 위험도를 판단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것뿐인가. 지난 명일동 사건과 지난해 연희동 사건 전에 균열에 대한 민원이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민원이 있었음에도 행정의 소극적인 대처가 결국 사고를 키운 셈이 됐다.
새로운 상식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
그러자 급기야 시민이 나섰다. 시민들이 이틀 만에 자료를 모아 만든 싱크홀 지도가 SNS를 통해 등장했고, 각종 포털 부동산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불확실하고 제한된 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부정확한 부분도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말이다. 물론, 행정의 입장도 아주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땅에 금이 간 것 같다’는 민원에 섣불리 대처하기에는 그로 인해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제기되는 민원이 더 크고 두려웠을 것이다. 본인의 재산권에 제한을 받을까 봐 인근 주민들이 싱크홀 관련 위험 경고를 쉬쉬했었다는 뉴스도 들린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집값’을 운운하며 정보를 감추는 것이 정말 내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일까? 도시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기는 각종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서로 감수하고 돌아가는 여유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의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다르더라도 새로운 상식과 문화로 만들어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땅이 부풀고 금이 간다면 신고와 통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고 작동하게끔 해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불편은 민원을 제기하기보다 재난을 막는 문화로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2025년, 짧은 봄이 지나면 곧 장마가 닥칠 것이다. 올해 장마는 유독 길 거라는 예보를 들었다. 또 나이가 들어가는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싱크홀이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다. 예고된 위험이 인재, 재난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새로운 상식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