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속 세상    2025.9월호

블라인드 마케팅이 만든 소비 서사

라부부 현상


오민정 편집위원




“요새 저 캐릭터가 많이 보이는데, 저게 예뻐? 왜 이렇게 많이 들고 다녀?”

“팀장님 안목이 좀 까다로워서 그렇지 저 정도면 대부분 귀엽다고 할 것 같아요.”

“좀 중국산 느낌 나지 않아? 난 별론데.”

“모르셨어요? 저거 중국 캐릭터에요. ‘라부부’라고.”

“아, 나 캐릭터 이름은 들어봤었는데 매칭이 안 됐네. 어쩐지.”

“저거 요새 SNS에서 완전 인기잖아요.”

“맞아, 연예인들이 엄청나게 사더라고. 근데 저거 랜덤이라매?”



요즘 인기 있는 캐릭터 ‘라부부’의 탄생은 우연처럼 보인다.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정체가 모호한 토끼 같은 캐릭터에 뚜렷한 서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부부’는 전 세계 MZ세대의 책상 위와 침대 위를 점령했다. 이 캐릭터의 이례적 인기는 단순히 ‘귀엽다’는 감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뒤에는 ‘팝마트’가 설계한 치밀한 마케팅 전략, 그리고 시대적 맥락이 결합되어 있다.


맥락 없는 시대, 소비자가 서사를 만든다

20세기 캐릭터 산업은 서사 중심이었다. 미키마우스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통해, 포켓몬은 게임과 TV시리즈의 세계관을 통해 소비자와 연결됐다. 그러나 라부부는 이야기를 생략했다. 기존 캐릭터 산업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가장 생소한 지점이기도 하다. 라부부는 자체 스토리를 보유하는 대신 소비자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게 했고, 그 순간들이 곧 라부부의 서사로 만들어졌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속 수많은 언박싱 영상, 희귀 모델 인증 사진, 귀여운 반응표정이 모두 라부부의 ‘집단적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즉, 라부부는 제작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쓴 이야기의 산물이다.


블라인드 박스, 소비를 게임으로 바꾸다

라부부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팝마트의 블라인드 박스 전략을 짚어야 한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 어떤 모델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설정은 소비 과정을 일종의 ‘확률 게임’으로 만든다. 희귀 모델을 얻기 위해 반복 구매를 유도하고, 실패조차 또 다른 소비의 이유가 된다. 구매부터 언박싱, 공유, 재구매로 이어지는 이 순환 구조는 단순한 판매를 넘어 참여형 경험을 창출한다. 특히 언박싱 순간의 극적인 표정은 숏폼 콘텐츠와 결합하며 폭발적인 확산력을 얻었다. 블랙핑크 리사, 킴 카다시안 같은 유명인의 인증은 이 소비 경험을 글로벌 현상으로 가속했다.


결핍 세대의 작은 사치

하지만 라부부의 인기는 단순히 캐릭터의 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 청년 세대의 사회적 배경과도 맞물린다. 높은 주택 가격, 취업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들은 큰 행복을 누리기 어렵다. 대신 몇만 원대의 블라인드 박스를 통해 '작은 사치'를 소비한다. 라부부는 일종의 위로 상품이며, 귀여움으로 포장된 현실 도피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는 희귀 모델을 뽑는 순간의 짜릿함을 통해 삶의 좌절을 잠시 잊는다. 


오늘날의 소비문화 

우리가 라부부 현상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는, 라부부가 단순히 캐릭터가 아니라 오늘날 소비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사를 설계하는 이는 더 이상 제작자가 아니다. 소비자가 직접 언박싱과 공유를 통해 이야기를 쓴다. 제품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얻는 과정, 즉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확산시키는 원초적 힘은 귀여움이라는 보편적 코드다. 불안정한 세대일수록 이런 작은 사치에 더 열광한다. 라부부의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면의 원리와 전략, 즉 “이야기의 민주화, 경험의 상업화, 귀여움의 보편성, 작은 사치의 경제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새로운 소비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