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속 세상    2025.12월호

AI시대, '생각하는' 인간이 사라진다


오민정 편집위원




“뉴스 봤어? 챗GPT로 커닝하다가 들켰다며.”

“그런 거 보면 솔직히 요즘에 대학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어차피 다 AI로 하는데.”

“애들 과제 내는 거 보면 80~90%는 AI가 하는 거 같은데. 대충만 봐도 알잖아.”

“커닝인지 혁신인지, 이제 가끔은 그것도 헷갈린다니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문서를 완성하기 위해 인간은 반드시 수많은 중간 단계를 거쳐야 했다. 자료를 모으고, 구조를 고민하고, 초안을 쓰고, 고치고, 더 고치면서 사고는 느리지만 깊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 AI는 이러한 과정을 거의 통째로 대체하고 있다. AI는 인간이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그 결론은 더 이상 ‘초안’이 아니라 인간이 손볼 부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완성도 높은 형태로 도착한다. 기술이 먼저 도달하고 인간이 나중에 따라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순간부터 우리는 현실적으로 새로운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시간을 들여야만 생각이 존재했고, 시간은 곧 고민의 깊이를 의미했다. 지금은 시간을 들이는 행위가 오히려 비효율로 해석되며, 오래 고민하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비친다. AI가 시간을 압축하며 인간은 시간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중간단계의 상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중간 단계’의 상실이다. 인간의 사고는 본래 모호함을 견디는 힘 위에서 작동했다.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는 시간이 있었고, 이 시간을 통과하면서 사고는 다듬어졌다. 하지만 AI가 이 과정을 대신해 주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모호함에 대한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빈 페이지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구조를 고민하며 답을 찾는 시간을 더 이상 견디지 않는다. AI가 이미 결과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간은 ‘직접 만들고 구성하는 뇌’가 아니라 ‘여러 결과 중 하나를 선택하는 뇌’로 변하고 있다. 사고는 깊이에서 멀어지고, 선택의 효율만을 중심으로 최적화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그 결과 인간은 복잡한 문제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능력을 잃고, 문제와 마주하는 순간 가장 빠르게 해결할 방법만을 떠올리는 존재가 되어간다. 사고방식이 단순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고 구조 자체가 얕아지는 흐름이다.


서사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이 변화는 대학 교육에서 가장 빠르게 드러났다. 챗GPT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시험 문제가 더 이상 시험으로서 의미가 있을 수 없고, 과제의 본래 목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학은 지난 수십 년간 지식을 전달하고 평가하는 기관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지식 전달은 이미 AI가 더 잘한다. 설명은 더 명료하고, 예시는 더 풍부하며, 속도는 인간 교수의 수십 배다. 그렇다면 대학이 지녀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고 해석하고 확장하는 ‘인증 기관’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학생이 AI를 사용했는지를 감시하는 기존의 방식은 교육 시스템을 ‘협력’이 아닌 ‘의심’과 ‘통제’의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대학은 이제 학생이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그 활용 속에서 어떤 판단과 지적 기여를 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수정이 아니라 대학의 존재 이유를 재구성하는 문제다.


동시에 기술 기업의 경쟁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기술력 그 자체가 기업의 평가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기술 뒤에 있는 서사가 시장을 움직인다. 미국의 테크 기업 CEO들이 글을 쓰고 블로그에 기술 철학을 밝히며 국가와 시장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기술의 철학을 먼저 말하는 기업이 규제의 기준을 선점하고, 시장의 기대치를 설정하며, 인재가 모이는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술 자체는 금방 표준화된다. 남는 것은 기술이 향하는 방향, 그 방향을 설명하는 언어, 그리고 그 언어가 만들어내는 서사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여전히 제품 사양서 중심의 기술 의사소통에 머물러 있다. AI 시대의 경쟁에서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기술은 방향을 설명하는 서사 없이는 정체성을 잃기 때문이다.


AI 시대, 다시 묻는 말

결국 중요한 질문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AI가 시간을 압축하고 사고의 과정마저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인간다움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 기술이 인간보다 먼저 결론에 도달하는 시대에, 인간의 느린 사고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빠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느림은 왜 여전히 중요한가. 창의성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버티는 힘에서 나오고, 판단력은 오랜 고민의 시간에서 자란다. AI는 이 시간을 줄여주지만, 동시에 이 시간을 빼앗는다. 기술이 깊이를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의 붕괴’와 ‘사고의 재편성’이 동시에 진행되는 전환기에 서 있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기술을 따라잡는 속도가 아니라, 기술이 지워버린 시간의 의미를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빠른 결과물보다 깊은 질문이 더 중요한 이유는, 질문이야말로 인간 사고의 마지막 남은 영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