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해외기행│일본  2025.6월호

작은 도시들의 선택, 문화의 생명력이 빛난다

2025. 5. 15 - 5. 19




2025년 마당의 해외기행은 작은 것들의 가치를 도시의 동력으로 살려낸 일본의 세토내해의 섬과 작은 도시를 찾았다. 지난 시대의 것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생명과 가치를 불어넣고 있는 현장이다. 

버려진 산업유산과 잊혀진 전통유산이 예술을 만나 문화의 생명력을 키우고 사람을 불러 모아 일자리를 만들어낸 세토내해의 섬들과 지역의 품어온 자산을 미래의 힘으로 키워가는 작은 도시들의 열정은 놀라웠다. 

목조 건축의 미래를 여는 도시 ‘고치시’,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이 만난 세토내해의 섬 ‘나오시마’와 ‘데시마’, 방직의 역사를 재생의 힘으로 만든 ‘구라시키’, 안도 타다오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꿈의 무대로 이름을 알린 ‘아와지 시마’까지. 

각자의 지역성을 지키고 이를 도시의 색깔과 문화로 연결해 새로운 모습으로 가꾸어 나가는 도시의 노력과 그 결실을 이번 기행에서 만났다. 5월 15일부터 19일까지의 여정을 소개한다. 






건축으로 재해를 넘어서다 '아와지 꿈의 무대'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아와지 꿈의 무대(Awaji Yumebutai)'였다. 꿈의 무대는 국제회의장, 리조트, 온실, 야외극장 등 다양한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5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화단 100개가 계단식으로 배치된 '백단원'이 유명하다. 건물 구석구석 물이 흐르고, 바닥에는 수백만개의 조개껍데기가 박혀있는 것도 특징. 안도 타다오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공간이다.

이곳은 효고현 아와지섬의 북동쪽, 국영 아카시 해협 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본래 간사이 공항 건설을 위한 토석 채취로 훼손된 산비탈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실시설계를 거의 종료, 착공 시기에 들어가 있던 와중 1995년 한신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후 지진 재해 복구와 추모의 의미를 더해 전면 재설계되어 지금의 꿈의 무대가 되었다.






나무로 짓는 미래 '고치현립임업대학교'

오사카를 나와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의 터널을 지나고 나니, 푸른 숲이 아름다운 고치현이 나왔다. 일본에서 산림 비율이 가장 높은 이곳은 산과 나무가 도시를 감싸안은 듯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산림 비율이 89%에 달하며, 특히 질 좋은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많이 자란다. 편백나무는 일본 국내 생산량 1위를 차지한다.

숲과 나무의 힘을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 고치현립임업대학교다. 임업과 목조건축 분야에 특화된 이곳은 세계적인 목조건축가 구마 겐고가 초대 교장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 그 나무로 건축물을 세우는 사람이 함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산림 관리, 임업 기술, 목구조설계 등으로 커리큘럼이 나누어져 있다. 고치현의 임업 종사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이곳이 개교한 이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는 정원 미달이 발생했으나 고치현의 재정 지원으로 학교 운영은 큰 무리 없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 안에서 만난 유일한 외국인은 한국인이었는데, 뜻밖에도 전주대학교의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현직 건축가였다. 목조건축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늦은 나이에 이곳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와의 짧은 대화는 인상 깊었다.






건축, 자연을 품다 '유스하라 구름 위의 마을'

유스하라는 '고치의 티베트'로 불리는 깊은 산 속의 작은 마을이다. ‘구름 위의 갤러리’, ‘구름 위의 도서관’ 등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하여 ‘구름 위의 마을’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구마 겐고는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건축가였다. 그는 어느 날, 고치에 사는 지인에게서 유스하라의 오래된 연극용 목조 건물인 ‘유스하라자’가 무너져 가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때마침 버블 경제가 붕괴되며 도쿄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들이 모두 취소되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고치행을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유스하라자와의 만남을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역사적인 대면”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곳에서 목조건축의 매력을 발견했고, 현지의 재료를 활용하며 지역 기술자들과 함께 만드는 협업의 방식을 깨닫게 됐다. 

유스하라자 복원 프로젝트는 작은 치수의 목재를 조합해 섬세하고 인간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이 작업은 마을 중앙에는 식료품점과 호텔을 겸하는 ‘미치노에키 유스하라’까지 이어졌다.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유일한 건물로, 전통 재료인 볏짚을 지붕이 아닌 외벽에 써서 전통적인 상식을 살짝 비튼 모습이 돋보인다.

이후 '구름 위의 갤러리'와 '구름 위의 도서관'도 설계하게 된다. 갤러리는 고치산 삼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나무 형상의 구조물로, 마치 사찰의 처마를 연상케 하는 지붕 아래 가느다란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원래는 바로 옆에 ‘구름 위의 호텔’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안전상의 이유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2018년에 완공된 ‘구름 위의 도서관’은 구마 겐고의 건축 철학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광택 나는 삼나무 책장이 배치되어 있다. 천장은 마치 거꾸로 된 숲처럼 느껴지고, 십자형 기둥은 자연광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며 고요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유스하라 주민들은 책을 읽고, 지인들과 담소를 나눈다.

마을 회관 또한 그의 손을 거쳤다. 외부 창문은 유리에 나무 패널이 반복적으로 붙어있는 디자인인데, 완전한 개방이 가능하여 때때로 마을회관은 하나의 무대가, 주차장은 객석이 된다. 내부 한쪽은 공무원들의 주민들을 상대하며 일을 하고 있는 흔한 주민센터의 모습이지만 반대편은 고치의 전통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책과 구조물이 놓여있다. 

이틀밤을 보낸 고치현 여행에서는 숙소 또한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묵은 <OMO7고치>는 호시노리조트 계열의 호텔이다. 식사는 지역 농수산물 위주로 제공되며, 매일 저녁 9시에는 고치의 전통 무용인 '요사코이'를 소개하는 공연이 진행된다. 전주의 호텔에서도 매일 저녁 판소리 한 대목씩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바다 위의 예술 축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세토내해의 나오시마, 데시마, 이누지마, 우노항 등 17개 장소에서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현대 미술축제다. 섬 곳곳에 설치 위주의 작품들이 놓이게 되는데, 2013년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섬 주민들과 관광객에게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시작됐다. 마당은 그 중 데시마섬과 나오시마섬을 방문했다.

데시마와 나오시마를 오가는 우노항에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다. 한국 작가 부지현의 설치작품 <더 홈>. 제주대 미술학과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석사를 거친 그는 제주도와 바다의 정체성을 작품에 녹여낸다. 한국인 작가로는 유일하게 올해 세토우치트리엔날레에 초청되었는데, 주요 작가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워 우리는 시간을 내어 그의 작품을 찾았다.  





고요한 자연과 예술의 섬, '데시마' 

풍요 풍(豊), 섬 도(島). '풍요로운 섬'이라는 뜻의 데시마(豊島). 항구에 내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언덕을 한참 올라가면 데시마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 보면 하얀 우주선 같기도 한 이 건물은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했다. 작품이 나열된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달리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미술관에 들어서기 위해선 신발을 벗어야 하며, 휴대폰 사용도 금지된다. 덕분에 명상하듯 잔잔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즐길 수 있다. 바닥 곳곳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따금 물이 흘러나오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당고처럼 동그랗고 하얀 공들도 놓여있다. 천장에 나 있는 큰 구멍으로는 바깥의 풍경이 보이고, 바람과 낙엽이 들어온다. 이처럼 물과 바람이 흐르는 내부는 예술가 '나이토 레이'의 작품이다. 건축과 자연, 예술이 모두 연결된 듯한 이 공간은 단순히 ‘보는’ 미술관이 아니라 ‘머무는’ 미술관이었다. 


버려진 섬에서 피어난 예술 '나오시마'

나오시마섬은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반기는, 세토내해를 대표하는 예술의 섬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용도 폐기된 제련소와 폐기물로 가득했던 이 섬이 재탄생한 것은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에 의해서다. 그가 1992년 예술을 통해 나오시마를 재생시키고자 호텔과 갤러리를 겸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세웠으며, 이후 이곳은 나오시마 예술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자 핵심 축이 되었다. 일종의 기업 메세나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도 나오시마 곳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특히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 과정에 작가들을 초대해 벽면에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하는 등 공간 자체를 예술의 일부로 만들었다. 뮤지엄 내부에는 참여 작가들의 작품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나와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이우환 미술관이 나온다. 한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우환과 안도 타다오가 협업해 2010년에 개관한 공간이다. 외부의 설치 작품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놓여 있고, 내부는 ‘침묵의 방’, ‘그림자의 방’, ‘명상의 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인 '선으로부터'를 비롯해 각 공간의 주제에 맞는 작품들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 배치되어 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관람객은 오롯이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나오시마 곳곳을 걷다 보면 평범해 보이는 주택에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혼무라 이에 프로젝트’다. 빈집을 작은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생 프로젝트로, 1998년 미야지마 타츠오의 <카도야(Kadoya)>를 시작으로 신사, 공장, 치과 등 다양한 장소가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은 가이드가 되어 관람객을 안내하고, 몇몇 전시의 경우 연출에도 직접 협력했다고 한다. 마을과 예술, 주민이 함께 살아 숨 쉬는 방식이 인상 깊다.





방직산업의 요지가 문화유산으로 '구라시키 미관지구'

구라시키는 오카야마현에 있는 인구 47만 명의 크지 않은 도시다. 바다에 접해 있진 않지만 작은 강을 끼고 있어 예부터 물류유통의 요지로 번성했고, 자연히 상업이 발전하면서 거상들의 저택과 큰 창고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구라시키라는 이름도 창고가 많다하여 붙여진 것인데 오늘날까지도 많은 창고가 남아 있어 작은 박물관으로 활용된다. 도심을 통과해 흐르는 작은 운하와 회벽, 검은색 지붕의 주택과 창고거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 도시의 큰 자산이 됐다. 번성했던 방직 산업은 '데님'으로 이어져 여전히 일본 최대 데님 생산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마당이 묵은 호텔인 '아이비스퀘어'에서도 구라시키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구라시키 방적공장’이 그 전신으로, 183실의 객실과 연회장, 결혼식장 등의 부대시설, 지역 전통 산업을 전수하고 전시하는 ‘아이비학관’, 화려했던 방적산업의 흔적들을 모아 놓은 산업기념관 등으로 리모델링링해 ‘아이비스퀘어’라는 호텔로 문을 열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외벽을 온통 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 '오하라미술관' 

나오시마에 베네세 그룹이 있다면 구라시키에는 오하라 그룹이 있다. 오하라미술관은 1930년 문을 연 일본 최초의 근대미술관이자 사립미술관으로 크기는 작지만 일본 작가들을 비롯하여 엘 그레코, 클로드 모네, 폴 세잔, 르누아르, 피카소, 잭슨 폴록 등 세계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들의 걸작이 모여 있다. 떄문에 일본 근대 미술사뿐 아니라 일본의 서양미술 수용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하라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구리시키 출신 사업가 오하라 마고사부로다. 오하라에게는 유능한 화가 친구 '코지마 토라지로'가 있었다. 오하라는 고지마를 통해 유럽의 걸작들을 수집하고 일본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근현대 작품을 모았다. 1929년 코지마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자 코지마를 기리며 미술관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하라그룹은 미술관 외에도 구라시키 전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오하라 2대인 오하라 소리치로는 구라시키 도심의 보존이 필요성을 느끼고 주민들과 지역 건축계, 문화인들과 함께 보존 운동을 일으킨다. 이는 일본 정부의 1968년 ‘쿠라시키시 전통 미관 보존 조례’ 제정으로 이어지며 매해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지금의 구라시키를 만들 수 있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