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서울로 떠나고 있습니다. 서울·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지역 소도시들의 고민거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청년들이 사라진 도시는 생기를 잃어 쓸쓸해졌고, 심지어는 도시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며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쇠퇴하는 오래된 도시들이 다시 일어설 방법은 없을까요?
오랫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이 문제를 ‘마을’에서 답을 찾는 곳들이 있습니다. 지역으로 찾아온 청년들이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만들고, 이를 통한 활력으로 사람들이 모이자 도시의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공주와 부여의 이야기입니다.
공주와 부여는 백제 문화의 혼이 남아있는 도시입니다. 공주는 부여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64년간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습니다. 백제의 문화는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온화하고 세련된 점이 특징입니다. 공주와 부여의 문화유적인 무령왕릉, 송산리 고분군, 부소산성, 정림사지 등에서 그러한 특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강은 인류 문명의 근원입니다. 세계의 주요한 문명들은 모두 강을 거점으로 발생했지요. 백제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도시를 끼고 흐르는 ‘금강’ 덕분입니다. 금강은 해상 무역이 발달했던 백제에서 물자를 나르는 교통의 중심이자, 농업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공주와 부여의 도시재생 중심이 된 것도 바로 금강입니다. 공주 제민천 은 공주시 남쪽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입니다. 과거 제민천은 공주시의 중심으로, 공주의 시가지가 제민천 양편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금강 너머 신관동이 개발되며 주요 상권이 이동했고, 제민천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구도심으로 변했습니다. 하천은 오염되어 악취가 났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공주시는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제민천 생태하천 조성사업’과 ‘제민천 활력거점 조성사업’을 시작합니다. 제민천 주변 하수도를 정비하고 반죽동 일원에 하숙마을과 문화·예술 향유 공간을 준공했습니다. 맑고 깨끗한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만나볼 ‘주식회사 퍼즐랩’, ‘곡물집’, ‘가가책방’ 등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제민천 일대에 조성한 문화마을이 그 결실입니다.
부여군 규암마을은 백마강변에 있습니다. 백마강은 부여 사람들이 금강 하류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백마강 규암 나루는 전라도에서 한성까지 가는 물건을 배에 실어 나르던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습니다. 해방 전후 규암 마을 가구수는 200세대에 이르렀으며, 마을에서 열리던 오일장이 부여 읍내 오일장보다 규모가 더 컸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마을 인근에 백제교가 조성되었고, 규암 나루를 거치지 않아도 부여읍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마을은 점점 사람이 줄어들어 거리에는 빈집과 빈 상점이 즐비했습니다.
쓸쓸해진 규암마을을 주목한 것이 ‘주식회사 세간’의 ‘자온길 프로젝트’입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공예사업을 해온 세간의 대표가 부여에 내려와 규암마을의 빈집을 개조하여 공방을 차렸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청년공예인들이 각자의 전공을 살려 공방을 열기 시작하자 규암은 하나의 공예마을이 되었습니다. 올해부터 부여군에서도 ‘123사비 공예마을’ 사업을 진행하며 규암 공예마을 지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211회 마당기행에서는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마을’에 주목합니다. 지역으로 돌아온 청년들과, 그들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원도심 주민들. 서로의 일상에 파고들어 함께 도시의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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