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 바로 옆에는 소위 커피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가 하나 있다. 나는 워낙 ‘맛치’인지라 “커피가 맛있다”라는 개념을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회사 옆 커피 맛집의 맛 또한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손님들은 언제나 꽉 차 있고, 그렇게 번성해 옆 가게까지 매장을 확장한 걸 보면서 미각 아닌 시각으로 맛집의 실체를 확인할 따름이다.
나는 가끔 회사 옆 커피 맛집을 들른다. 외부 손님 접대 공간으로는 나쁘지 않은 데다 이 집만의 특별한 메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이름의 블랙커피가 적혀있는 메뉴판 한자리에 ‘레이먼드 카버’라는 고유 명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나는 커피 맛은 잘 몰라도 레이먼드 카버는 좀 안다. 그래서 우쭐한 마음에 레이먼드 카버를 주문할 때가 있다. 단, 동행인에게 “레이먼드 카버가 누군 줄 알아요?”라는 재수 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적당히 쓰고 신 아메리카노에 레이먼드 카버라는 고유 명사를 블렌딩해서 마신다는 건 나에게 썩 괜찮은 문화 이벤트다. 그걸로 충분하다.
미국 워싱턴 주 시골 마을 ‘야키마’에서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레이먼드 카버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열여덟 살에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열여섯 살의 어린 신부는 뱃속에 아이를 배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두 아이의 아빠였다.
레이먼드 카버는 약국이건 제재소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는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다. 대신 밤에는 인근 대학의 야간 강좌를 수강했다. 스물한 살에 치코 주립대학 문예창작반에 들어간 그는 존 가드너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카버에게 존 가드너는 평생의 ‘문학 스승’으로 추앙되었다.
1960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레이먼드 카버는 첫 단편 소설 <분노의 계절>을 한 문예지에 발표했다. 2년 후에는 그의 첫 희곡 <카네이션>이 훔볼트 대학에서 상연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의 삶에 문학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지만, 문제는 생활난이었다. 스물아홉 살에 카버는 파산 신청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같은 해인 1967년 <전미 최우수 단편소설>에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선정 수록되는 영광을 누렸다.
안톤 체호프와 헤밍웨이의 전통을 이어받은 그의 소설 구조는 군더더기 없이 단단했다. 뼈까지 발라낼 만큼 엄격하게 줄이고 줄인 그의 문장들은 수많은 여백으로 인해 오히려 풍성했다. 반면 내용은 전반적으로 우울했다. 주로 가난한 시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미국 내 우파 평론가들로부터 “미국의 아름다운 가치를 애써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레이먼드 카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나 이야기를 씨앗 삼아 소설을 써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고사 직전이던 당시 미국 단편소설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슈퍼 루키로 레이먼드 카버라는 이름이 조금씩 거론되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빈궁했다. 더 불행한 사실은 그가 언제부턴가 심한 알콜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
20년간 동고동락하던 아내와 별거하고 삶의 나락에서 허덕일 즈음, 레이먼드 카버는 극적으로 그의 첫 단편 모음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출간할 수 있었다. 1976년의 일이다. 미국 출판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듬해에 이 단편집은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다. 이것이 그에게는 큰 자극이었을까? 그해 6월 어느 날, 레이먼드 카버는 마술을 부리듯 술을 딱 끊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그는 금주를 실천했다. 좋은 일은 넝쿨째 굴러오기도 하나 보다. 같은 해 텍사스의 한 작가 회의에 참석했다가 만난 여성 시인이자 평론가인 테스 갤러거와 그는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카버가 죽는 날까지 그의 인생 뮤즈가 되어주었다.
레이먼드 카버에게 1980년대는 문학적 완숙기였다. 이 시기 그의 소설은 초창기보다 너그러워지고 희망적으로 변했다. 문장엔 살이 붙었고, 여백은 줄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더 친절해졌다는 뜻이다. 당시 그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 아닐까.
1983년 전미도서상 후보 그리고 이듬해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대성당>은 그런 온기를 머금고 있다. 모두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소설집은 레이먼드 카버 문학을 즐기기 위한 가장 낮은 문턱이자 친절한 안내자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표제작 <대성당> 이야기부터 해보자. 아내의 오랜 친구가 하루 묵어가기 위해 집에 찾아온다. 그는 남자이고 십 년 전 아내를 고용했던 사람이며 얼마 전 부인을 떠나보낸 홀아비다. 눈이 먼 사람이기도 하다. 아내는 호들갑을 떨며 오랜 친구를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남편은 이유 모를 불안과 묘한 질투심에 허덕인다. 그날 저녁 마뜩잖은 감정의 남편과 들뜬 아내, 차분한 태도의 맹인 사이 아주 특별한 저녁과 밤이 펼쳐진다. 같은 소설집에 수록된 <깃털들>은 성별만 바뀐 채 <대성당>과 대칭을 이룬다. 이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와 한 제빵사 간에 오간 사소한 오해와 화해의 풍경을 담았다.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단편이다.
나는 <대성당>에 실린 소설 중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가장 좋아한다. 삶이 팍팍하고 또 힘들다고 느낄 때 읽으면 위안이 된다. 그런데 나만 좋은 게 아니었나 보다. 미국에서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한국에서는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살아생전 이 작품의 내용을 자신의 한 에세이에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소설집 <대성당> 읽기가 좋았다면 레이먼드 카버의 이전 작품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읽기도 추천한다. 단, <대성당>보다 덜 희망적이다. 문장 사이의 여백이 많아서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큰코다친다. 그렇다고 이 두 권의 책을 무시한다면 당신은 레이먼드 카버의 절반만 읽은 셈이 된다.
좋은 처방전이 있다. 얼마 전 국내에 출간된 <레이먼드 카버의 말>을 먼저 읽고 도전해 보시라는 것.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후반 그가 죽기 직전까지 행한 수많은 기자와 비평가들의 인터뷰 모음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소박한 삶과 문학에 대한 진심 어린 감정이 인터뷰 속에 진하게 묻어 있다. 레이먼드 카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 이만한 책도 없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복잡한 수학 공식을 풀기 전 참고서를 잠시 들여다보는 게 괜찮은 방법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