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의 ‘인문의 숲’ 올해의 두 번째 강연은 ‘한국 다큐계의 멘토’라 불리는 김옥영이 함께했다.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연출가인 그는 ‘타인의 삶을 그려낸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러한 주제를 정한 이유는 다큐멘터리가 결국 ‘사람’을 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 저녁 전주 공간봄에서 열린 강연 자리, 그는 모든 역사와 사건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제작한 영화 〈목소리들〉과 〈기계의 나라에서〉의 장면들을 함께 보며, 그가 인물을 발견하고 작품에 담아내는 지난한 과정을 나눴다. 작가는 늘 네 가지 키워드를 마음에 품고 작품 속 인물을 그려낸다. ‘발견’, ‘공감’, ‘의심’, ‘표현’이다.
발견
우리가 뭔가를 찍기 위해서는 먼저 인물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발견’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지 않나요? 남들이 똑같이 보는 걸 발견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나만이 볼 수 있는 독창적인 시선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어떤 공식이 없습니다. 그만큼 굉장히 어려워요. 저는 사실 방송작가가 되기 전에 시인이었어요. 문학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호구지책으로 방송사에 들어갔다가 다큐멘터리 작가가 직업이 되어버렸죠.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기계의 나라에서〉를 제작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이분들이 쓴 시를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네팔 이주 노동자들이 쓴 시를 번역해 출간한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라는 시집이었는데, 처음 이 시집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시를 너무 잘 써서가 아니에요. 저한테 이주 노동자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언제나 우리가 그들을 타자화해서 바라본다고 생각했죠. 근데 시집을 읽다보니 그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시들은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 굉장히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구나’라는 발견. 이것이 저의 발견이었어요.
그렇다면 시집에 실린 사람이 30명 정도 되니, 이들 중 ‘누구를 카메라 앞에 세울 것인가?’ 또 다른 발견을 해야 했죠. 일단 저는 마음에 드는 시를 골랐어요. 그리고 선택된 10여 명의 사람들을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각자 다른 일터에 있는 세 사람을 최종적으로 섭외했어요. 전직 기자 출신의 지번, 어린 딸의 미래를 위해 그리움을 견디며 일하는 은행원 출신 수닐, 목장에서 홀로 일하는 전직 교사 출신의 딜립인데요. 여기 오는 네팔 노동자들은 전체적으로 학력이 굉장히 높아요. 저는 이때 인물을 정하는 중요한 조건으로, 네팔에서의 직업과 현재 한국에서 하는 일의 간극이 큰 사람들을 골랐어요. 그래야 이분들이 느끼는 감정을 우리가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모두는 그런 기억을 하나쯤 갖고 있어요. 상처받은 자존감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이죠. 그런 기억은 앞서 말한 것처럼 네팔에서의 생활과 이곳에서의 간극이 클수록 더욱 강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어요. 이런 의미들이 전달되기를 바랐습니다.

<기계의 나라에서>
공감
두 번째 키워드는 공감입니다.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만들든, 시나 소설, 수필을 쓰든 우리는 사람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다른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고, 좋은 작품을 만든다고 봐요. 근데 그 공감 능력은 어디서 올까요? 모든 사람은 살아오며 행복한 기억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기억도 갖고 있죠. 저는 그 감각들을 확장해 타자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공감이 일어난다고 봐요. 그래서 고통스럽고, 슬프고 아픈 경험들이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나중에는 자산이 된다고들 이야기하죠. 아픔을 많이 겪을수록 우리 안의 공감 능력이 커지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커지는 거예요.
영화 〈목소리들〉의 김은순 할머니는 4.3 당시 언니와 함께 끌려갔다가 혼자서 살아 돌아오신 분이에요. 언니는 다른 여성들과 같이 백사장에서 총살을 당했죠. 할머니의 고통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지만, 단 한 번도 그날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으세요. 그런데 저는 할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나서 직접 증언 없이도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말을 하지 않아도, 고통을 삼키는 표정과 몸짓이 영상 속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침묵이 곧 고통의 표현이라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할머니의 마음을 더 크게 이해할 수 있겠죠.
만약 우리가 증언자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 않았다면 김은순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만났다 해도 그저 몸이 아프신가보다 하고 돌아왔을지도 몰라요. 분명한건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혹은 어떤 장면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할 때, 우리는 발견과 함께 대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통로도 발견하게 돼요. 어쩌면 발견과 공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의심
세 번째 키워드, ‘의심’하는 능력은 이제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서도 중요해지고 있어요. 세상은 과거의 상투적인 것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죠. 그런 지점에서 의심하는 능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나친 이야기 같지만, 저는 후배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요. “인터뷰이를 믿지 마라. 그들이 다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라.” 인터뷰의 기술은 사람들이 준비한 꾸며진 말을 듣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걸 끌어내는 것이어야 해요. 사람은 누구나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있어요. 그걸 꿰뚫고 밑바닥에 있는 진실의 파편을 보려고 하는 노력이 항상 필요합니다. 그러다보면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어요. 우리는 그걸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하죠.
〈기계의 나라에서〉의 한 장면 중 유독 시와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 컷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이 시에 삽입된 음악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음악이 너무 온화하고 편안했다고 할까요. 그때 음악감독에게 수정을 요청하며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딜립의 웃고 있는 얼굴에 속지마라.” 딜립은 항상 웃으며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그가 하는 말, 그가 쓴 시는 그렇지 않죠. 음악감독에게 딜립의 표정을 보지 말고 이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을 느껴보라고 전했어요. 그래서 처연하고 무거운 지금의 음악이 깔리게 되었죠. 겉으로 보이는 표정 너머로 이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의심이 필요한 순간은 이렇게 온갖 곳에서 드러납니다.
흔히 다큐를 찍을 때는 촬영 대상과의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신뢰만 하게 되면 촬영하는 사람이 그 대상의 도구가 되어버릴 수 있어요.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대상에 대한 의심도 항상 놓지 말아야하는 이유입니다.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걸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봐야하는 걸 보여주는 게 다큐멘터리가 할 일이죠.

표현
우리가 아무리 카메라를 들고 노력해도 다큐멘터리는 한계가 많은 장르예요. 정해진 대로 찍을 수 없기 때문에 놓치는 게 너무 많죠. 하지만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위대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제가 다큐멘터리를 항상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데요. 다큐에서 ‘표현의 영역’이라는 건 ‘예술의 영역’입니다. 극영화처럼 채우지 못하는 부분들은 다큐멘터리만의 표현 방식에 의해 돌파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은유나 상징은 문학에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영화도 정말 다양한 은유를 통해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죠.
〈목소리들〉의 첫 장면은 안개 낀 숲과 마을 풍경 위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겹쳐지며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 듯하다가, 소리가 점점 뚜렷해지면 여성들의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화면 속 마을은 4.3 때 불에 타 폐허가 된 후 복원되지 못한 마을 중 하나예요. 수런수런 들리는 소리는 인터뷰했던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중첩시켜 놓은 소리입니다.
목소리가 커지다가 딱 멈추는 순간, 고요함과 함께 한 문장이 떠요. ‘침묵이 여성들의 주요한 기억 방식이었다’. 이 장면은 일종의 암시입니다. 우리가 제목을 ‘목소리들’이라고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인데요. 70년 동안 여성들이 말하지 못한 어떤 말들을 우리는 이제 하겠다 이런 선언이기도 하고, 비로소 불분명하던 목소리가 ‘말’이 되는 의미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여기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복수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도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한 여자의 인생 스토리가 아니고 제주 여자들이 같이 겪었던 4.3사건에 대한 기억이잖아요. 이런 장면 하나하나에서 그런 의미를 볼 수 있는 거죠.
다른 장면을 보면, 이건 그냥 파도인데요. 이 장면이 주요하게 들어간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 여성들은 4.3 이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살아냈어요. 처음에는 이런 의미를 담아내려고 과거 사진들을 모았습니다. 근데 사진들만 놓고 보면 이분들의 모습이 뭔가 평화로워 보이는 거예요. 평범하게 일하는 해녀의 모습 같아 보이는 거죠. 그들이 애를 쓰며 살아온 생애가 이것만으로는 전달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사진을 다 빼고 몰아치는 파도로 영상을 대체했습니다. 영화적 흐름 안에서 보면, 이 파도가 그들이 살아온 세월을 의미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의 표현 안에선 밥 먹는 장면 하나에도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화면 속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걸 느끼고 있는지. 이런 걸 이해하고 찾아내려는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우린 많은 걸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는 내가 이 사람한테서 이해한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나아가 어떻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할 뿐입니다.
김옥영
〈다큐멘터리극장〉, 〈인물현대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한국 현대사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집필해왔다. 다큐 전문 제작사 스토리온을 설립. 작가를 넘어 연출자이자 제작자로도 활동을 넓히며, 제주 4.3을 다룬 영화 〈목소리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기계의 나라에서〉를 제작했다.
정리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