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새만금 갯벌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한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의 주인공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 작년 ‘수라’ 상영회에서 황윤 감독은 오 단장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 ‘나’라고 말했다. ‘맞다. 그랬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군산으로 이사 온 황 감독이 새만금 사업의 문제를 동필 씨의 활동과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일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가 열린 군산예술의전당에서 동필 씨를 다시 만났다. 경찰 반, 공무원 반인 설명회장. 수라 갯벌을 지키려는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설명자료 하나 없이 미군기지 활주로 증설 사업을 숨긴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설명회에 거세게 항의했다.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서 서울지방항공청과 용역업체는 경찰의 보호 아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자료를 읽고 내려갔다. 그야말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동필 씨는 마이크를 낚아채고 왜 주민설명회가 무효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신공항, 신공항 하지만 유지되는 것은 제주 노선 하나일 겁니다. 새만금 신공항 활주로의 길이는 2,500m에 불과해요. 기존 군산공항보다도 짧습니다. 무슨 동남아 허브공항입니까? C급 항공기만 취항할 수 있을 뿐인데. 마지막 수라 갯벌을 없애면서까지 미군기지 확장 군사 공항, 불 꺼진 유령 공항을 꼭 지어야 합니까? 24만 평을 미군에 넘겨줘야 한다는 것, 이것 알고 여기 오셨습니까?”
사람 좋은 웃음으로 갯벌과 물새, 가무락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던 평소의 그와 달랐다. 절박한 심정으로 부당한 권력과 멸종에 저항하는 전사였다. 이들을 엄호하던 나는 딱 한 마디 말했다. “이 판은 나가리, 어머니들 다 나갑시다”
군산 산북동에서 나고 자란 동필 씨는 갯벌과 도요물떼새에 진심이다. 둥지에 먹이를 나르는 어미 새처럼 바지런히 새만금을 오갔다. 수천 번은 넘을 것이다. 수라 갯벌, 거전 갯벌, 해창 갯벌도 손금 보듯 훤하다. 망둥이 잡으러 다니던 소년은 나무와 풀에 관심 많은 덕후로 자랐고,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옥구염전에서 10여만 마리 도요새의 아름다운 군무와 울음소리를 보고 들었다. 영화의 한 대목 '그 아름다움을 본 죄'로 청춘을 새만금 갯벌과 함께하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
목수의 아들인 동필 씨는 손재주도 좋다. ‘딱따구리 아빠’로 널리 알려진 김성호 생태 작가도 목수의 아들이다. 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목수의 아들은 나무에 둥지를 트는 새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나 싶다. 새만금 해창 장승도 뚝딱뚝딱 잘 깎는다. 그가 모는 1톤 트럭은 새만금 행사 공용 차량이다. 필요한 장비도 다 실려있다. 환경공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활동하면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생물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지만, 목수나 인테리어, 설비 관련 일을 택했다. 2교대 아파트 관리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다.
“언제라도 새만금 조사 활동에 시간을 쓸 수 있도록 일을 선택했어요. 요즘은 새만금 신공항이나 상시 해수유통 운동본부 일로 너무 바빠서 일 나가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20년 넘게 정부 기관의 물새 조사원 참여 경력과 민간 연구 활동을 인정받아 조사에 시간을 쓸 수 있는 환경영향평가사로 일할 수 있어 좀 낫습니다.”
만나면 인사 정도 나누던 동필 씨를 자주 보게 된 것은 2006년경. 이즈음 새만금은 도요물떼새 무리가 떠난 갯벌처럼 쓸쓸했다. 새만금 사업 취소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고, 방조제 끝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서울에 있는 환경단체들도 훗날을 도모하며 돌아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삼보일배로 대표되는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운동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그 폐허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시절, 시화호 해수유통과 생태공원에서 희망을 보고,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 참여했다. 텍스트에 근거한 논리적인 반대와 구호를 통한 운동을 넘어 바닷물이 막힌 갯벌과 바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렇게 물새 팀장이던 동필 씨를 2년가량 따라다녔다.
재판에선 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새만금 갯벌은 죽음으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백합과 동죽을 마른 땅에 토해 냈고, 농발게와 칠게들은 말라 죽었다. 하구역의 칠면초는 다시 싹을 틔우지 못했다. 한쪽에선 마른 갯벌에서 짠 모래 먼지가 인다고 칠면초와 퉁퉁마디 씨를 뿌렸다. 그 많던 새들도 크게 줄었다. 붉은어깨도요는 95%가 줄었고, 조류 86% 사라졌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던 기수역과 바다에는 죽은 물고기가 수시로 떠올랐다. 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에 적조가 발생하더니 어느새 담수호에서 생기는 녹조로 변했다. 큰빗이끼벌레가 만경강 하구에 등장했고, 방조제 근처는 해파리로 넘쳐났다. 방조제 바깥 주꾸미를 잡는 소라방엔 퇴적물만 가득 차고 그물엔 뻘곱이 끼었다. 상괭이 250여 마리가 떼죽음했다. 전북도 어업생산량도 반토막 났다. 바다 생물의 자궁이자 어패류의 산란처인 새만금 갯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막이 이후 10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수라 갯벌에 앉은 새들
오동필 단장
동필 씨는 죽어가는 갯벌의 대리인을 자임했다. 치열하게 갯벌을 찾는 새의 종과 수를 세고 또 셌다. 방수제 공사와 준설, 매립으로 변화하는 갯벌의 변화를 꼼꼼하게 관찰했다. 결과는 다음(Daum) 새만금 생태 정보 '갯벌과 버드나무' 카페에 올린다. 거의 모든 새만금 살리기 운동의 역사가 담겨 있다. 정기 보고서도 발간하고, 보도자료와 심포지엄을 열어 시민과 공유해왔다. 멸종위기종을 발견하고 서식지를 조사하는 모니터링 수준을 넘어서 호소 바닥 퇴적물 분석과 저층의 산소 부족 구간에 대한 수질 조사로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알려왔다.
“갯벌 복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새만금호 내 수심별 염분 농도와 용존 산소입니다. 총인(TP), 총유기탄소(TOC)와 같은 공학적인 수질 항목 관리도 중요하지만, 물이 생명의 근원인 만큼 생물이 살 수 있느냐가 수질 관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시민생태조사단은 2016년부터 배를 빌려 수심별 용존산소를 재고, 바닥 펄을 퍼 올려서 퇴적토질과 생물상을 조사한다. 초기에는 한일 공동 갯벌 조사단원으로 인연을 맺은 사토 신이치 박사에게 장비를 빌리고 조사 방법을 배웠다.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산소가 없는 ‘데드존(Dead Zone)’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을 확인했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지 않고 층을 이루는 염분 성층화로 수심 3~4m 아래 구간은 산소가 거의 없거든요. 미생물도 모두 죽은 상태이고, 모랫바닥엔 펄이 시궁창처럼 쌓여 재첩이나 저서생물이 연쇄적으로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총인이나 총유기탄소는 등급 외 수질이라도 대규모 폐사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소는 다르다.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다. 짧은 순간 대량폐사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염분 농도와 용존 산소는 관리가 새만금 수질 관리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수라’ 개봉과 잼버리 사태 이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후 주변의 도움으로 장비를 구입해 매년 조사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시화호, 화옹호, 보령호까지 배를 띄워 조사했다. 시화호는 조력발전 등으로 해수유통이 확대되면서 성층 현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화옹호와 보령호는 수심 4~5m 아래부터 썩었고, 새만금은 수심 2m 구간부터 저서생물이 살지 못할 정도이다.
“담수호로 관리되는 서해 연안 간척지 호소를 해수유통으로 역간척 해서 강 하구를 열어준다면 금세 생물상이 회복되고, 자정작용이 활발해져 수질 개선비도 줄어들고, 수산자원이 복원되어 지역 소득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부도 화들짝 놀랐다. 새만금 수질을 관리하는 환경부는 표층과 저층, 두 지점만 조사를 해왔다. 이 자료만으로는 성층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기 어렵다. 동필 씨는 1m 간격으로 염분 농도와 용존산소를 조사했다. 그리고 성층화 현상을 심화하는 원인으로 호 내에서 펄 모래를 퍼 올려 매립용 토사로 쓰는 내부 준설을 지목했다. 모래를 퍼낸 만큼 수심이 깊어져 성층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전문가와 환경단체가 예측한 사안을 직접 조사를 통해 입증한 것이다. 이 같은 성과들이 쌓여 2021년 2월, 새만금위원회는 공사를 시작한 지 30년 만에 담수호 물관리 정책을 중단하고 바닷물이 들고 나는 해수유통 물관리 결정했다. 해수유통 이후 객관적인 지표상 수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하지만 성층화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홍수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시와 가력 배수 갑문 두 곳을 항시 열어 둬서 물이 오가도록 해야 합니다, 호 내 기준 수위를 해수면 평균보다 1.5m 낮게 관리하다 보니 소조기에 해수 유입량이 매우 적거든요, 이마저도 공사 등을 이유로 배수갑문을 열지 않으니 수질 개선에 한계가 있고, 산소가 없는 데드존이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생물이 살 수 있는 새만금 수질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본부’ 결성을 주도했다. 서명받고, 홍보하고, 매월 새만금 수라갯벌 들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을 통한 갯벌 복원을 설명했다. 천주교 성직자와 신도, 시민 3만 명이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 서명에 동참했다. 천주교는 해창 갯벌에서 매주 기도회를 열고 있다.
동필 씨는 이렇게 다시 모인 힘을 바탕으로 새만금 기본계획 변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이다. 7차 기본계획 변경은 잼버리 사태 이후 새만금 SOC 사업 적정성 검토 등 일종의 강제 구조 조정 성격을 띠고 있다.
“땅부터 넓히고 보자는 것은 지역발전 측면에서도 도움 안 됩니다. 갯벌 기능이 유지되는 원형지는 보존하고, 대신 매립이 완료된 곳에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단계적 완성형 개발로 바꿔야 합니다. 배수갑문 조작은 홍수 위험이 있을 때로 최소화하고 기준 수위 – 1.5m를 높여서, 더 많은 바닷물이 상시로 들고 날 수 있도록 기본계획을 변경해야 합니다.”
동필 씨는 갯벌과 도요새의 ‘아름다움을 본 죄’로 30년 가까이 새만금을 찾고 있다. 속죄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자연이 선사한 아름다움의 눈으로 상실의 바다, 회한의 바다 그 너머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갯벌로 출근한다. 동필 씨, 도요새를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