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23회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2024.9월호

여름의 소리축제가 남긴 것 




유독 뜨거웠던 여름, 올해 전주를 달군 여름 축제는 전주세계소리축제였다. 개최 시기를 앞당기며 여름의 한가운데에 열린 제23회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이왕준, 이하 소리축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이번 축제는 지난해 열흘에 걸쳐 진행되던 일정을 닷새로 축소하며 짧은 기간 더욱 풍성한 공연을 선보이고자 했다. 외형적인 변화를 비롯해 프로그램의 크고 작은 변화와 성장을 시도한 올해의 소리축제는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기획공연으로 선보인 개·폐막작

판소리부터 클래식, 대중음악, 월드뮤직 등 올해는 80개 프로그램, 106회의 공연이 관객과 만났다. 야외공연장을 포함해 객석 점유율이 82%를 넘어서며, 10개 프로그램 16회 공연이 매진을 기록했다. 올해의 키워드인 ‘로컬프리즘: 시선의 확장’은 전북 예술을 동시대 예술로 확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 의미는 개·폐막작을 통해 가장 먼저 엿볼 수 있었다. 전북에 뿌리를 둔 농악, 그리고 판소리를 소재로 한 기획공연을 통해 예술성에 대중성을 더한 무대를 선보였다. 개막공연 <잡색X>의 경우, 지난해 아쉬운 평을 남겼던 개막작 <상생과 회복>과 비교해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였다. 폐막작 역시 작년에는 외부 초청작으로 꾸며 소리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신선함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올해는 <조상현&신영희의 빅쇼>를 통해 판소리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신선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축제다운 축제로 

소리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판소리 다섯바탕>은 올해도 매일 공연을 이어가며 소리축제만의 중심을 다잡았다. 시대의 명창부터 올해의 국창, 라이징 스타까지 세대를 뛰어넘은 우리 소리의 매력을 전했다. 지난해 호평을 받은 <전주의 아침>도 올해 계속되었다. 경기전을 배경으로 선보였던 무대를 올해는 전라감영으로 옮겼다. 좀 더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자연 풍광과 함께 국악, 전통무용,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저녁에는 상반된 분위기의 <소리썸머나잇>을 즐겼다. 소리프론티어 세 팀의 공연과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클래식, 대중음악 팀들이 여름밤과 어울리는 무대를 채웠다. 




소리캠프(위)와 전주의아침_시대가 전하는 춤 이야기




공연예술 너머 프로그램의 확장  

신설 프로그램인 <소리학술포럼>도 주목할 만하다. 포럼을 통해 공연 중심의 구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통예술에 대한 논의를 함께했다. 전북의 농악, 춤, 판소리, 민요, 무형유산 등 다섯 개의 주제를 두고 분야별 학회 및 연구소, 전문가들이 모였다. 올해 첫 선을 보인 만큼, 소리축제의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고민도 필요하다. 현장에서 이루어진 논의들이 이후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점검하고 축제 안에서 포럼의 역할을 명확하게 다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외에도 국내외 음악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전통음악을 배우는 합숙형 캠프 프로그램 <소리캠프>를 새롭게 마련하는 등 공연에 한정하지 않은 음악 축제에 다가가기 위한 시도가 보였다. 


23년만의 첫 여름 축제 

올해는 특히 개최 시기를 여름으로 옮기면서 폭염, 강우 등에 따른 안전문제의 우려가 있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주요 공연장 주변에는 그늘막과 미스트 분사기 등이 설치되어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주는 역할을 했다. 예술성을 강화한 작품은 실내공연장에서, 대중성이 높은 공연은 밤 시간대 야외공연장을 활용하며 여름축제의 특성을 고려한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다행히 더위로 인한 인명피해와 안전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으며 5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정체성은 여전히 물음표 

새로운 조직위와 집행위원장을 맞이한 후 두 번째 축제를 치른 전주세계소리축제. 개·폐막작의 완성도를 높이고 새로운 분야의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등 눈에 띄는 변화 속에서 올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매년 숙제처럼 따라오는 소리축제만의 정체성은 여전히 정의하기가 어렵다. 소리축제의 목표는 판소리와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있다.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어 특색 없이 나열되는 것만으로는 그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지역에서 쌓아온 23년이라는 시간을 좋은 밑거름으로 두고 있다. 소리축제가 본래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다시금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해 목표에 매년 조금씩 다가가는 축제가 되길 기대한다. 






개막작 리뷰



농악의 새로운 질문 <잡색X> 

올해의 화제작은 개막작인 <잡색X>. 잡색은 농악에 등장하는 일종의 배우다. 음악을 담당하는 악기잽이에 비해 부차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비주류라는 속성이 오히려 평범한 민중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잡색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이 '잡색X'다. 연출에 적극, 음악에 원일 감독이 참여했으며 무대는 임실필봉농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5막으로 구성된 공연은 '당산굿'으로 시작한다. '새'와 '곰' 부족이 등장하는 연극적인 굿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이 적장의 영혼을 위무하는 상여소리를 연행한다. 전쟁이 끝나고 가라앉은 배를 무대 위에 수직으로 세워 당산나무처럼 표현한 연출이 돋보였다. 2막의 '샘굿'에서는 생명이 태어나는 샘, 과거 마을의 우물이었던 것이 현대의 '세탁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드럼세탁기의 문을 통해 무대로 태어나는 독특한 연출이 함께했다. 3막 '마을굿'은 바닥의 천문도가 회전하며 기악 합주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열두발 상모가 배치되어 우주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4막 '판굿'에서는 사전 모집된 30명의 도민들, 일명 '시민 잡색'들이 우리 사회에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퍼레이드 형식으로 선보였다. 마지막 5막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농악이 등장했다. 임실필봉농악이 앞선 모든 공연의 요소들을 한데 아우르며 '대동굿'을 완성했다. 


<잡색X>는 실험적인 연출로 새로운 형식의 농악을 보여주었다. 지역 도민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다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어 아쉬웠다. 실제로 공연이 끝난 후 SNS에 올라온 리뷰들은 모두 호불호가 뚜렷했다. 모두를 만족하는 공연은 아니었지만, 관객 커뮤니티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농악에서 말하는 마을 공동체는 해체된 지 오래다. 사람들은 농촌을 떠났고, 이웃 간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풍물을 치며 지나던 논두렁과 밭두렁은 아스팔트 도로가 되었다. 올해는 농악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10주년이다. <잡색X>는 농악이 그저 보존되어야 할 유물인지, 현대 극장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동시대 예술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아닐까. 




폐막작 리뷰 


두 국창의 소리길 <조상현&신영희의 빅쇼> 

폐막작 <조상현&신영희의 빅쇼>는 90년대 방영된 TV 프로그램 ‘KBS빅쇼’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개그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 티비를 통해 판소리 대중화에 앞장섰던 두 명창. 청춘 시절 만나 60여 년을 동료이자 친구로 함께 소리길을 걸었다. 작품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조명하며 판소리가 가진 흥과 재미를 관객들에게 되새겨준다. 지역 출신의 이왕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전북의 젊은 소리꾼 10명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연주에는 KBS국악관현악단이 함께했다. 


공연은 두 명창의 탄생과 성장을 이야기하며 시작했다. 보성에서 정응민 명창에게 소리를 배운 조 명창과, 만정 김소희의 애제자였던 신 명창. 그들의 인생사를 전북의 소리꾼들이 흥겨운 소리로 전한다. KBS에 남아있던 각종 방송 자료도 함께다. 또한 두 명창이 직접 만든 소리인 '사철가', '흥타령'도 들을 수 있었다. 오정해 소리꾼이 두 명창을 인터뷰하며 '사철가'와 '흥타령' 탄생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했다. 


조 명창이 놀부, 신 명창이 마당쇠로 변신한 짧은 창극에서는 두 명창의 여전한 재치와 만담을 볼 수 있었다. 창극으로 관객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주었다면, 이어지는 소리에서는 깊은 감동을 주었다. 42년생 신 명창은 심청가 중 '심봉사가 도망간 뺑덕어미 찾는 대목'을, 39년생 조 명창은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불렀다. 마지막 소리길은 진안중평굿과 함께 넘었다. 무대에 풍물판을 벌인 진안중평굿은 두 명창과 함께 객석으로 향했다가 바깥의 모악광장으로 나가 연주를 계속했다. 


공연을 준비하며 조상현 명창은 왜 판소리를 '노래'가 아닌 '소리'로 표현하는지 아느냐고 제작진들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노래는 사람의 것, 소리는 자연의 소리까지 다 아우르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은 이들은 이번 폐막작에 그 이야기를 녹여내고자 했다. 무대 위 두 명창의 목소리,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추임새, 관현악단의 연주까지. KBS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번 공연은 9월 16일 추석 연휴 저녁 KBS에서 방송으로도 볼 수 있다. 




소리프론티어 리뷰 


한국음악의 길을 개척하는 자들 <소리프론티어X소리의탄생2> 

국악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젊은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리프론티어>. 올해는 경연의 형식으로 전환되어 전주MBC와 공동 기획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14일부터 16일까지 본선에 진출한 '추리밴드', '국악 이상', '삼산' 세 팀이 차례대로 야외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만났고, 17일 결승 무대에서 본 심사가 이루어졌다. 


'삼산'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다. 독특한 가사와 함께 여러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일례로 마지막 곡이었던 '아니, 그 돈을 벌써?'에는 '이제 땅에 떨어진 돈을 주울래도 사람들이 카드를 쓰니까 바닥에 떨어져 주울 돈도 없단 소리야'와 같은 가사가 나온다. 나머지 두 팀은 비교적 활동한 지 오래된 팀들이다. '국악 이상'은 JTBC <풍류대장>에 출연하여 TOP5 오르기도 했던 그룹으로, 여성 보컬을 중심으로 신명나는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추리밴드'는 우리 민요를 유쾌하게 편곡한 곡들에 연희적인 퍼포먼스가 더해져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소리프론티어>는 현재 과도기에 들어서 있다. 2021년 소리프론티어의 시즌2를 알리고 창작과 제작을 지원하는 형태로 전환했지만, 올해 다시 경연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전주MBC가 촬영한 영상이 추후 <소리의 탄생2>로 방송될 예정이다. 공연의 장르 또한 2021년 판소리에 한정했다가, 작년 기악까지 그 범위를 넓혔으며, 올해는 아예 그 범위를 없앴다. 조직위는 유사한 신진 국악인 지원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규모를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