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4.8월호

나 혼자 산다, 충만하게 순간을 향유하며

퍼펙트 데이즈



김경태 영화평론가




도쿄의 공중 화장실 청소를 맡고 있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노년의 나이에 혼자 살지만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홀로 충만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영위한다. 영화는 그가 새벽에 기상해서 출근 준비를 하고, 공중 화장실까지 차를 몰고 가서 성실하게 청소를 하고, 퇴근 후 단골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련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틈틈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발견하며 미소 짓기도 한다. 그에게는 삶의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어 보인다. 그저 오늘이 어제와 다름없기를 바랄뿐이다.


나아가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며 애써 과거에 머물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카세트테이프로 루 리드의 ‘Perfect Days’ 같은 올드팝을 듣고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의 정열」 같은 고전 소설만을 헌책방에서 문고판으로 구해서 읽는다. 물론 단골 목욕탕이 사라지는 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세상을 막을 도리는 없다. 히라야마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 흑백 사진으로 인화한 뒤 선별해 날짜 별로 보관한다. 그 미세하게 다른 사진들에는 서로를 구별해줄 특정한 시간성이 기입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그가 카메라로 포착하려는 건 어제와 다른 오늘이 아니라, 그 어떤 시간의 흐름에도 구애받지 않는 아름다운 한 순간의 영원한 박제이다. 그렇게 그는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으로부터의 탈출을 모색한다.


히라야마는 동질적 시간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자신만의 시간을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와 단절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감각을 활짝 열어둔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변과 소통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관심을 내보이기도 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기도 한다. 가출을 하고 그의 집에 찾아온 조카 ‘니코’의 등장은 그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녀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히라야마의 일상에 동반한다. 히라야마의 삶은 니코를 통해 미래로 뻗어나간다. 니코는 엄마의 말대로, 자기 가족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삼촌의 일상을 체험하며 삶의 다른 가능성을 일별한다. 히라야마는 그녀에게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삶의 가치를 물려준다.





영화는 후반부에 와서야 그의 과거에 대해 암시한다. 니코를 찾아 온 엄마, 그러니까 히라야마의 여동생이 운전기사가 동승한 고급 세단을 타고 나타난다. 그에게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건네고 그가 사는 집과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에 당황하는 눈치다.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이제 찾아봬도 괜찮다고 말한다. 아마도 히라야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요구하는 삶을 거부하며 가족과의 연을 완전히 끊고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로소 앞서 니코의 가족과 히라야마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납득이 간다. 그 둘을 떠나보낸 히라야마는 참았던 울음을 쏟아낸다. 현재의 삶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내야만 하는 관계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느 때처럼 운전을 하며 출근을 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그는 니나 시몬의 노래인 ‘Feeling Good’을 들으며 환한 표정과 슬픈 표정 그 사이에 놓인 모호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진다. 노래는 그에게 어떤 감정을 환기시키고 있을까?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현재에 대한 만족감일 수도 있으며, 혹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일지도 모른다. 어제와 다름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을 대하는 매 순간의 감정까지 같을 수는 없다. 자신만의 충만한 날들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감정들을 온전히 끌어안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