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6.5월호

참혹한 현실을 담아내기 위한 집요한 시도

힌드의 목소리 



김경태 영화평론가




2024년 1월 29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차 안에 갇힌 6살 소녀 ‘힌드’가 적신월사의 콜센터로 구조 요청을 한다. 차에 함께 있던 가족들은 총격으로 모두 목숨을 잃은 후이다. 힌드는 구조대가 있는 병원과 불과 8분 거리에 있지만, 가자 지구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의 적십자와 서안지구의 보건부를 통해 이스라엘군의 승인을 받는 지난한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적신월사의 활동가인 ‘오마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승인을 기다리는 상사 ‘마흐디’와 계속 언쟁을 벌인다. 마흐디는 그동안 소중한 구조대원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그에게는 구조대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편, 동료인 ‘라나’는 구해달라며 애원하는 힌드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상적인 질문을 하거나 함께 기도문을 암송한다. 


이처럼 〈힌드의 목소리〉는 실제 사건을 스크린에 그대로 새겨 넣었다. 당시의 통화 녹음을 바탕으로 힌드의 구조 과정을 상세히 재현하는 일종의 ‘재연 드라마’ 형식을 취한다. 단. 힌드의 경우 녹음한 목소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영화는 이를 분명하게 고지한다. 고로, 힌드는 이 영화에서 배우가 연기로 재현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다. 얼굴 없이 오로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잡음 섞인 목소리로 나머지 등장인물들과 소통하지만 모든 연기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지표가 된다.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의 핍진성은 오롯이 그 불분명하고 흐릿한 목소리와의 호흡에 달려있다.


처음 신고가 들어온 후 5시간쯤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구조 승인이 떨어진다. 마흐디는 구조대의 구급차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지도를 보며 경로를 확보한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러나 힌드가 숨어 있는 차를 가시권에 두고서, 폭발 소리와 함께 구조대원과의 연락이 끊겨버린다. 최악의 결과에 절망한 활동가들은 머리를 감싼 채 힌드와의 마지막 통화를 시도한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는데, 그 화면에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실존 인물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것은 당시에 촬영한 영상 자료를 활용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 배우의 연기와 핸드폰 화면 속 실존 인물의 동작은 놀랍게도 정확히 일치한다. 아마도 이 영화가 픽션이 아님을 단순히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이 시퀀스를 해당 영상 자료로 완전히 대체했을 수도 있다. 그 대신, 프레임 속 프레임으로 화면을 구성한 목적은 여태까지 목격한 픽션이 현실을 집요하게 직시하고 정향하는 강박적 방식을 과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힌드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순간, 영화는 후일담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제시하며 장르적 전환을 이룬다. 살아남은 힌드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카메라 앞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뒤 비로소 마주한 그날의 참혹한 흔적과 홈비디오에 담긴 천진난만한 힌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실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양식의 익숙한 규범을 따르는 충실한 일단락이다. 〈힌드의 목소리〉가 지향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그것은 비극적인 현실을 목도하는 순간의 감각을 얼마나 적확하고 생생하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이다. 그 목표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서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따라서 이 영화를 픽션이나 다큐멘터리, 혹은 ‘다큐드라마’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굳이 이 영화의 근원적 장르를 찾는다면 ‘현실’ 그 자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