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 속 N년 전 오늘   2026.5월호

1988년 5월, 우리는 길 위에 섰다
제1회 백제기행 '우리는 녹두새를 보았다'


         

 

1988년 6월호 통권 7호 



“백제기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간다는 것을 큰 희망으로 여긴다. 끝없이 펼쳐진 논과 들, 산과 바다에 우리가 꿈꾸어 온 역사와 노래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이 땅을 함께 딛고서 있는 공동체임을 뿌듯하게 자각하기 때문이다. 문화저널이 실시하는 백제기행은 지나간 시대의 유적지를 찾아 헤매는 한가로운 여행이 아니고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한반도를 절실하게 둘러보아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우리 시대와 우리 삶에 환원시키고자 하는 눈물겨운 바램에서이다.”


1988년 5월 15일, 서른한 명이 전라도의 길 위에 섰다. 마당의 첫 백제기행 '우리는 녹두새를 보았다'의 이야기다. 향토사학자 최현식 선생이 앞장서서 학생, 시인, 화가, 언론인, 교수 등이 모였다. 그들은 황토현전적비와 기념관, 전봉준 장군 생가, 사발통문이 만들어졌다는 고부면 신중리의 언덕배기, 그리고 백산성지 등 동학 유적지를 따라 녹두새를 찾으러 떠났다.


현재는 특별법과 기념일 등이 마련되었으니 이 기행이 평온한 역사탐방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해, 그 기행은 어떤 사명감과 용기를 필요로 했다. 이병천 소설가의 기행문은 당시의 공기를 이렇게 전한다. "버스 안의 분위기는 사명감과 크고 숭엄했던 당시의 뜻을 생각하며 혁명전신의 무게에 압도됐던 때문인지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상스러울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당시 동학농민혁명은 아직 ‘혁명’이 아니었다. 교과서에도, 공문서에도, 사람들의 일상어에도 그것은 ‘동학난’으로 불렸다. 지배층의 시각으로 규정된 그 이름은 농민들이 목숨 걸고 일어선 행위를 민란으로 축소했다. 1988년은 흔히 민주화의 원년으로 불린다. 6월 항쟁 이후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새 정부가 들어선 해였으며, 광주 역시 이때 비로소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전라북도 위에 남겨진 이름들은 그 봄바람을 온전히 맞지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썩을 놈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지금이라고 해서 예외라고 할 수 있으랴. 아직도 샅바는 저들만이 잡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갑오농민군들의 그 빛나는 후예인 민중들이 마주 서서 샅바의 한쪽 끄트머리라도 붙잡게 되는 날이 다시 온다면 멋진 한판승의 들배지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1988년의 기행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단순한 역사 강의가 아니었다. 왜 난이 아니라 혁명인가. 집강소가 설치되어 실제로 행정을 펼쳤다는 것, 조선 정부가 농민군과 협상을 맺어 전주화약을 맺었다는 것, 조정의 양심 있는 사대부들이 사대문을 열고 농민군을 기다렸다는 것, 심지어 흥선대원군이 밀지를 보내 농민군 대표부에 연락을 넣었다는 사실들이 오갔다.


전북 사람들에게 동학농민혁명의 무게는 특별하다. 혁명의 불길이 타오른 땅, 황토현과 백산과 우금치가 있는 땅, 그리고 그 이후 오랫동안 반란의 땅이라는 시선을 감내해 온 땅.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그 기억의 무게를 몸 어딘가에 지니고 산다는 것이기도 하다. 1988년 기행에 나선 서른한 명이 굳이 그 길을 걸으려 했던 것은 그 무게를 혼자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국가의 공인에 앞서, 이 땅의 사람들이 먼저 그것을 혁명으로 부르고 기억하기로 결심하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렀다. 동학농민혁명은 올해로 132주년을 맞았다. 역사학계에서는 재평가의 흐름이 이어졌고,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되며 동학농민혁명이 국가 공식 명칭으로 확정되었다.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기념일,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사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고 기념행사가 늘었다고 해서 기억이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물관이나 교과서 속에 머무는, 박제된 기억으로 밀려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당은 올해 '다시 역사기행'을 시작했다. 이 땅의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으며 우리는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 1988년의 발걸음이 그러했듯, 오늘의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서 기억을 다시 불러내려 한다. 역사는 그렇게 걷는 사람들의 발밑에서 다시 되새겨진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