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 왜 몰랐지?   2024.9월호

세상의 모든 유물은 가치가 있다

: 호남권 발굴유물 역사문화공간 '예담고'  




평소 지나던 익숙한 길목에서 낯선 표지판을 발견할 때가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주변의 공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의미와 이야기를 가진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깊숙한 곳 사이사이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마주하는 일도 가능하다. 문화저널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이들 숨은 공간을 찾아본다. 무심코 지나쳤거나 알았어도 관심이 없었던, 그러나 어쩌면 그래서 더 귀한 공간들이다. 







첫 번째 공간은 유물창고 ‘예담고’다. 전주 한옥마을을 지나 색장동 초입에 들어서면 이 생소한 이름이 적힌 작은 표지판이 우리를 안내한다. 한적한 길을 따라 쭉 걸어 들어가야만 숨어있던 예담고가 모습을 드러낸다. 예담고는 옛 신리터널에 있다. 기존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수장고로 조성한 이곳은 과거의 유물들을 보관하는 거대한 유물 창고다. 박물관도 아닌 곳에 수장고만 따로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어떤 유물들이 박물관 대신 이곳에 오게 되는 걸까.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여러 유물은 다양한 조사를 통해 선별과 분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국가 귀속 유물은 박물관에 보관되지만 비귀속 유물들은 조사를 진행한 기관이 별도로 관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비귀속 유물의 양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자 국가유산청은 이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관리하기 위해 각 권역별로 ‘예담고’를 만들었다. 예담고는 비귀속 유물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공간으로, 우리 유물을 학술연구와 교육 등의 목적을 위해 보관하고 권역별 고고문화유산의 가치를 이어가는 공간이다.


예담고는 충청권역에 처음 만들어졌다. 그 뒤를 이어 지난해 10월 광주, 전라, 제주를 포함하는 호남권역이 두 번째로 문을 열었다. 예담고는 상상했던 창고의 모습이 아니다. 예담고에 들어서면 잘 꾸며진 전시관이 먼저 반긴다. 지금은 상설전시를 통해 항아리, 기와, 그릇 등 주요 유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 오는 유물들은 주로 깨지고 부서진 조각들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온전한 그릇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파편으로 남아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한 유물들은 이곳에서 관람객과 만나며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체험공간도 인기다. 전시된 유물을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고 손으로 직접 만지며 세월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발굴 체험도 가능하다. 실제 발굴과정을 따라 모래로 뒤덮인 유물을 찾아나서는 체험이다. 고고학자가 된 듯 흙을 파내고 붓으로 털어내면, 삼국시대 세발접시부터 청동기 시대 토기까지 숨어있던 유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발굴한 유물을 봉투에 담고 조사일지를 작성하는 것까지가 체험의 완성이다. 하나의 유물이 출토되기까지 과정을 몸소 경험하며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더욱 흥미롭게 발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더 많은 유물을 만나고 싶다면 수장고에 방문하는 방법이 있다. 하루 두 차례,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수장고가 개방된다. 엄청난 양의 유물이 양옆으로 이어지는 광경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구석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유물을 한눈에 살펴볼 수도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 전시 해설과 수장고 안내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어, 직접 보고 들으며 유물 문화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유물활용연구원 신은주 씨는 우리가 보는 유물들이 어쩌면 신기한 전시품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지금의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오래 전 사용했던 일상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물건도 먼 미래에는 박물관에 전시되는 날이 올 것이다. 쓰임을 잃고, 남은 건 파편 하나뿐이라도 모든 유물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예담고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예담고를 둘러보며 옛것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신은주 유물활용연구원




호남권 유물창고 예담고 

전주시 완산구 은석길 32-134ㅣ063-288-7612

유물창고 투어 11시·15시 (회당 20분)ㅣ관람료 무료




글ㆍ사진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