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도시를 읽는 방법  2024.9월호

도시 이야기로 채워지는 책장

: 기찻길 옆 골목책방 대표 윤찬영


윤찬영 대표



익산. 이 도시의 역사(歷史)는 역사(驛舍)를 보면 알 수 있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철도를 놓고 이리역을 만들면서 그 주변으로 도시가 발전했다. 해방 이후 1977년에는 폭발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익산은 역을 중심으로 언제나 전국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이었다. 덕분에 익산역이 자리한 중앙동 또한 한때 도시를 성장시킨 번화가로 많은 사람이 오고 갔던 동네다.


도시의 오랜 기억이 지나는 철길 옆에, 지난해 초여름 작은 서점이 하나 생겼다. 옛 삼남극장 골목의 '기찻길 옆 골목책방'이다. 이곳의 대표 윤찬영 씨는 이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익산을 읽어낸다. 


익산이 문화도시라는 증거, 이곳에 있다

기찻길 옆 골목책방은 지역의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다. 다홍색의 외벽 위로는 원광대 서예과 출신의 이상현 캘리그라퍼가 쓴 글씨로 만든 간판이 있다. 원광대는 전국 최초의 서예과가 만들어진 대학으로 많은 서예가를 양성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가 윤흥길, 안도현, 양귀자, 박범신 등의 책이 놓여 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들을 배출한 것도 원광대다. 그 위로는 익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학술 서적들이 있다. 맞은 편 기다란 원목 테이블에는 로컬과 도시를 주제로 한 책들이 큐레이션 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곳에 앉아 익산을 읽는다.


익산은 전국적으로 깊은 문화적 자원을 가진 도시이지만 사실 명성은 이전 같지 않다. 원광대 서예과는 폐과되었으며, 국문과의 인기 또한 예전만 못하다. 윤 대표는 이를 아쉬워하며 화려했던 그 시절을 조명하는 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북토크에서는 안도현, 박범신 작가 등이 초청되어 시민들과 만났다. 익산역 맞은 편 여행자센터에서는 전시를 진행했다. 김남중의 <기찻길 옆 동네>, 김호경의 <삼남극장>, 박성우의 <어머니> 등에서 따온 글귀에 서예가 김승민, 박태평, 안유미, 한소윤 등이 혼을 불어넣었다. 윤 대표의 기획으로 고향을 오랜만에 찾은 한 작가는 이런 행사로 익산을 기억하게 해주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 대표가 기록한 지역 이야기




윤 대표는 개인의 글로서도 도시를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윤찬영의 익산블루스'다. 그는 이글을 통해 도시에 숨겨진 애틋하면서도 격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삼양라면 공장이 익산에 생긴 까닭, 학전 김민기가 농사꾼으로서 살았던 익산, 1977년 일어났던 이리역 폭발사고 등 잊고 있던 옛이야기들이다. 


지방 소멸의 해법 찾기

익산 토박이인가 싶은 행보이지만, 사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 살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익산에 내려온 것은 2022년 2월이다. 


"서울에서는 사회혁신과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지방 소멸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의 전신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게 구체적인 계기가 됐죠. 지방에서 애쓰며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그때 처음 봤습니다. 계속 수도권에서 생활해와서 지방 청년들의 정서를 몰랐죠."


강화도의 청풍협동조합, 인천의 개항로프로젝트, 공주 제민천의 퍼즐랩 등 다양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만나 취재하고 지방 소멸의 해법을 연구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등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책을 만들고 나자, 이제는 타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고 싶었다. 새롭게 자리 잡을 지역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 전주에 왔던 어떤 하루.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핀 지도에서 익산이 눈에 띄었다.



박범신 작가와의 대화



"처음에는 익산이라는 도시도 몰랐어요. 어렸을 때는 이리로 배웠고, 이리역 폭발사고가 있던 곳으로 알고 있었죠. 지도를 보니 KTX가 다니는 역이 있는 거예요. 심지어 도심 한복판에요. 이런 환경인데 어떻게 상권이 죽을 수가 있지? 신기하다. 일단 임대료가 싸겠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익산에는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청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도시에 가면 자리 잡긴 수월하긴 하겠지만 얹혀가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도 익산에 왔죠."


어떠한 연고도 없었지만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건너건너 네트워크를 쌓아갔다. 현재 자리잡고 있는 중앙멘션의 식구들과도 그렇게 만났다. 익산의 다양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건물인 '중앙멘션'. 이곳에서 다양한 팀들과 중앙동을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책방은 올해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 1층 책방은 북카페의 형식으로 꾸미고, 이어지는 2층의 공간은 서예가들과 함께 캘리그라피의 공간으로 만든다. 벌써 여태명, 이상현, 안유미, 박태평 등의 서예가들이 뜻을 함께했다. 


윤 대표는 도시에도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때가 있는가 하면, 부침이 와서 발길이 끊기는 때가 있다. 책방이 있는 중앙동도 마찬가지다. 과거 명동 못지않게 북적였다는 이 거리. 기찻길 옆 골목책방이 우뚝 지키고 서서 다시 한번 살려내고 싶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