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군산북페어
축제를 즐기는 일 역시 ‘독서’
어느 때보다 뜨거운 도서전 열풍 뒤, 독서율이 화두로 떠올랐다. 역설적이게도(?) 도서전의 인기는 실질적인 독서율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여러 도서 축제의 흥행에 비해 우리나라의 평균 독서율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작년 기준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은 5.4권. 매년 최저기록을 조금씩 회복하는 정도다. 도서전의 인기는 결국,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독서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책 소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결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 역시 긍정적이라 평가한다. 이미 ‘독서’의 정의가 바뀌어버린 지금, 도서전은 책을 접하고 소비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행사장을 찾는다 해도, ‘보여주기 식’ 독서라 해도 도서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모두 잠재적 독자가 된다.
한 소설가는 ‘독서에 관련된 행사’ 역시 그 자체로 ‘독서’가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책 한권을 펼쳐 완벽히 읽어내는 일 말고도 책이 있는 공간을 걷고, 책을 만지고, 사람들에게 책 이야기를 듣는 것 모두 독서의 일부라고. 책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독서를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다. 독서율이 제자리인데도 이 많은 도서전이 왜 필요한가를 묻는다면 이런 이유들이 조금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25 군산북페어(위), 2025 전주독서대전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도서전
전국적으로도 책을 주제로 한 행사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첫 회를 열고 올해 2회를 맞은 행사만 해도 전북의 ‘군산북페어’를 비롯해 ‘부산 북앤콘텐츠페어’, ‘광명아트북페어’, ‘대전 중구 북페스티벌’, ‘광안리 해변 도서전’, ‘춘천북페어’등이 있다. 지역에서도 점차 독서문화에 주목하고 있음이 실감된다.
서울국제도서전과 같은 규모가 큰 행사에서는 부스의 크기부터 대형 출판사에 집중된다. 하지만 지역의 소규모 도서전은 기성출판과 작은 독립출판, 서점 등이 모두 비슷한 크기의 부스에서 차별 없이 독자와 나란히 만난다. 비싼 티켓 비용도, 치열한 예매도 필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지역민들이 다양한 독서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전북, 책의 도시가 되기까지
지역 도서전 붐이 불기 이전부터 ‘책’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축제로는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있었다. 대한민국 독서대전은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4년부터 매년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해 개최하는 큰 규모의 독서문화 축제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선정 지자체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해 축제를 치른다.
군포를 시작으로 인천, 강릉에서 차례로 열린 대한민국 독서대전은 4회 차에 접어드는 2017년 전주를 무대로 열렸다. 이는 이후 전주가 책의 도시로 나아가는 큰 계기가 되었다. 전주는 이듬해인 2018년부터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전주에 정착시켜 ‘전주독서대전’을 열었다. 시민 참여가 돋보이는 기존 독서대전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전주만의 지역성을 강화했다. ‘전주 올해의 책’을 선정해 시민과 함께 읽고, 독후감, 필사 등의 연중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일회성 행사를 넘어 일상에 독서문화가 자리 잡는데 역할을 했다.

2025 전주책쾌
올해까지 8회를 이어오며 지역의 독서문화를 이끌어온 전주독서대전을 중심으로, 전주의 풍부한 도서관과 동네책방들은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는 힘이 되었다. 지난 2023년 첫 회를 선보인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역시 그 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전주책쾌는 실제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서점 대표들이 모여 기획하고, 전주시 도서관이 협력해 만들어졌다.
전국의 독립출판 창작자와 출판사, 책방이 모여 북마켓을 열고 관련 강연, 전시, 체험을 진행하는 전주책쾌는 특히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특색 있는 콘셉트로 주목을 받았다. 조선시대 서적 중개상을 의미하는 책쾌를 활용해 ‘힙한’ 캐릭터를 만들고 축제에 참여하는 창작자들에게 현대판 책쾌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시도는 완판본을 중심으로 출판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전주의 이미지와도 부합했다. 오직 독립출판물에 집중한 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독립출판의 의미를 전하는데 가치를 두며 독립출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전주 외 지역에서는 고창책마을해리가 다양한 형식의 책 축제를 일찍이 고민해왔다. 2019년에는 한국지역도서전 개최 도시가 되어 아시아 및 한국 출판 역사와 어린이책 등 지역출판 생태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그리고 최근, 군산에서도 로컬 북페어의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해 첫 회를 연 ‘군산북페어’를 통해서다. 군산의 동네책방들이 연합해 출발한 군산북페어는 첫 회 만에 화제를 모으며 올여름 두 번째 행사 역시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앞선 전북의 도서전들은 책을 매개로 지역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 전주독서대전은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축제다운 축제’로, 전주책쾌는 독립출판의 가치를 조명하는 자리로, 군산북페어는 기성출판과 독립출판의 경계에서 출판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최근 열린 전주독서대전과 군산북페어 현장을 돌아보며 우리 지역 도서전이 남긴 의미와 가치, 과제를 짚어본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