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이재규
만경강은 전주천·삼례천·고산천·익산천, 네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이루는 강이다. 완주군 동상면의 밤샘에서 발원한 물은 동상·대아저수지를 거쳐 고산 들녘으로 흐르며 하나의 큰 물줄기를 이룬다. 이 가운데 고산천과 합류하는 상류 구간은 만경강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으로, 물길의 시작을 따라가기에 좋은 구간이다.
길의 출발점은 세심정이다. 만경강과 고산천 흐름이 만나는 상류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만경강이 굽이치는 지점을 내려다볼 수 있다. 뒤에는 고산 향교도 있다. 세심정은 조선 중기 문신인 만죽 서익선생이 세운 정자다. 그는 고산의 산수에 매료되어 이 일대에 만그루의 대나무를 심고 호를 ‘만죽’이라 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지금도 대숲이 이어진다.
세심정에서 대아저수지로 이어지는 뚝길. 세심은 마음을 씻는다는 뜻이다. 물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마음이 천천히 비워진다. 특히 이곳은 창포, 부들, 흑삼릉, 달뿌리풀 등 수변식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 강을 가로지르는 세심보에서는 먹이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왜가리들을 볼 수 있다. 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부담이 적고, 강을 옆에 두고 이어져 상류의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갈 수 있다.
이 뚝길을 따라 올라가면 안남마을에 닿는다. 마을 입구에는 조선시대에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느티나무 18그루가 줄지어 서 있다.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이 나무들은 지금도 마을을 지키는 보호수다. 느티나무길을 지나면 플라타너스 숲이 이어진다. 키 큰 나무들이 만드는 그늘 아래에서는 계절의 온도가 한층 낮아진다.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숨을 고르기에도 좋은 자리다. 이곳에서부터 강을 따라 상류로 향하면 풍경은 점점 깊어진다.
안남마을을 지나 대아저수지에 들어서면 물길의 풍경이 확 바뀐다. 수면이 넓게 열리면서 높은 산과 넓은 물이 동시에 다가오는 구간이다. 이곳부터 동상저수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상류 길은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운암산과 동성산에 둘러싸여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길이 넓지 않고 한적하여 물소리와 바람소리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다. 동상저수지를 지나 위봉 방향으로 올라가면 산세가 더욱 높아진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위봉사, 돌담 위 푸른 하늘의 위봉산성을 둘러보고 위봉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세찬 소리까지 마주하고 나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안남마을 앞 플라타너스숲-대아저수지-동상-위봉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 플라타너스 잎이 우거진 여름과 가을이 특히 좋은 안남마을 앞을 좋아한다. 고산 세심정 앞에서 대아저수지로 이어지는 뚝길도 사계절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호남가’에도 나오는 고산의 안개가 짙게 낀 날, 강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걷다 보면 풍경이 한층 또렷해진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결이 달라지는 길이라, 같은 자리라도 매번 다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만경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이 강변을 꼭 걸어보시길!
만경강 상류길
안남마을-대아저수지-동상저수지-위봉마을

#이재규 우석대학교 교수
젊은 날에 시와 소설을 썼으나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주로 정책 분야의 글만을 한동안 쓰다가, 2013년 다시 문학의 길로 돌아왔다. 〈시와 소설로 읽는 한국현대사〉, 〈사람의 숲에서 길을 묻다〉 등의 책을 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