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여행, 이 길  2026.5월호

소나무 숲과 노을 사이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대건 촌장이 걷는 ‘동호항에서 구시포항으로 오른바닷길’


사진 이대건



바다가 호수처럼 보이는 곳이 있다. 대섬과 변산반도를 향해 열린 동호항의 바다가 그렇다.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가 마을에 무성했고, 그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그래서 동호(冬湖), 겨울의 호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호항은 조용한 곳이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끼고 있고, 갯벌에서는 낚시를 하거나 조개를 캐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지금은 동백나무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대신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해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소나무 아래는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여기서부터 구시포항까지 십 킬로미터 남짓한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이름난 해수욕장을 끼고 있지만 피서철을 빼면 한적해 바다를 곁에 두고 천천히 걷기 좋다.


동호항에서 구시포항까지는 77번 국도를 따라 해안선이 이어진다. 걷든, 자전거를 타든, 차를 몰든 명사십리 해변을 옆에 두고 가게 된다. 이곳의 명사십리는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사구로 이루어진 직선형 백사장으로, 십 리에 걸쳐 길게 펼쳐진다. 중간중간 물이 빠진 해안길로 들어가 조개껍데기를 밟으며 걷는 재미도 있다. 이른 아침 구시포항에는 비린내와 바람 냄새가 뒤섞인다. 주꾸미와 꽃게를 실은 어선들이 들어오고, 갈매기 몇 마리가 방파제 위에 앉아 있다. 서해안의 작은 포구는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구시포항은 1800년대부터 소금을 생산하던 포구로, 염전 수문 모양이 소의 구시통(구유)을 닮았다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199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가막도라는 섬에 자리한다. 항구 입구에는 빨간색과 하얀색 등대 두 개가 서로 마주 보듯 서서 깜박이는 불빛으로 드나드는 배들을 안내한다.


구시포의 자랑 중 하나는 오래된 송림이다. 해변을 따라 해송이 도열하듯 서 있고, 북쪽 해변에는 노송이 숲을 이룬다. 걷다가 지치면 숲 안으로 들어가 솔내음과 바닷바람을 함께 맡으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갈매기가 내려앉은 해변 풍경도 한결 느긋하다. 해 질 무렵이면 노을이 특히 좋다. 바다 위로 번지는 주황빛도 아름답지만, 송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는 것도 매력 있다.




동호(冬湖)는 겨울호수라는 이름. 겨울 어느 날 뺨을 에는 바람이 땅을 얼어붙이는 날, 파란, 하얀, 회색의 면을 구획하는 몇 개 선분이 나란한 바다풍경을 마주한다. 갯벌 훑고 찬찬 밀려 들어오는 낮은 바다는 어느덧 발 아래까지 바다의 긴 한숨을 전한다. 그 숨, 우리 심장 고동에 감응한다. 동호항에서 오른편으로 바다를 두고 남으로 남으로 바닷길은 구시포항으로 이어진다. 왼편으로 계절을 고스란 부려놓은 들판 풍경을, 100년 전 바다 곁 땅을 일구려 사람들이 심은 방풍림 해송이 기울기를 뭍으로 비스듬 살아내는 산 풍경이 이어진다. 길 끝 구시포항은 가막도라는 작은 섬으로 다리를 놓아 항을 더 펼쳐냈다. 뭍에서 바다로 아주 완만한 경사를 돋아 옛 항은 새 옷을 입었다. 풍경너머 뱃사람들 노동의 살림살이로 부산부산, 아홉 개 장(九市)이 섰다는 그 풍요를 되살핀다. 이 두 항구 사이 어느 곁, 책마을해리에서다.





동호항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구시포항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

고창군 해리면에 자리한 '책마을해리'의 촌장이자 출판 기획 편집자. 책마을해리에서 누구나와 어울려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든, 꽃』, 『몰라꽃』, 『하늘 땅 사람이 어울려 고인, 돌』 같은 그림책을 함께 지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류나윤 기자